• Yum Joongho, Now that I don

    Yum Joongho, Now that I don't know, Installation View, ONE AND J.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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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의 소소한 (혹은 특별한) 이야기
눈으로 대상을 보고, 다시 카메라를 통해 대상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찍고, 그 중에서 작가가 임의적으로 선택하여 전시한다. 이것이 사진 전시의 일반적 과정이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대형 사진은 인간의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사진의 세부적인 디테일의 묘사, 한 눈에 포착할 수 없는 거대한 프레임, 인간의 시각과는 다른 균일한 시점의 부과를 통해서 사진의 미학적 정당성을 찾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사진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눈으로 대상을 보는’ 행위의 상대적 축소이다.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이 있기 이전에 대상과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눈이 있다는 사실(작가의 시선) . 어쩌면 이것은 사진의 대형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새로운 미학적 지향점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지표가 아닐까.

발견하여 마주 봄
염중호의 사진은 카메라의 시선이 아닌 대상과 내가 마주했던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전 개인전 <새로운 경계> (원앤제이갤러리, 2007)에서 염중호는 도시(서울, 파리, 암스테르담)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전시장 곳곳에 ‘숨겨’1) 놓았다. 관객이 사진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것은 특정 장소를 촬영한 여행 사진의 문맥에서 벗어난 낯선 사진이다. 그곳에서는 문화적 혹은 공간적 특수성을 야기하는 요소를 발견할 수 없다. 그곳에는 단지 작가가 바라본 사물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염중호는 그의 사진에서 여행자가 지니기 마련인 ‘차이(문화적 또는 공간적)’의 시선을 사진의 외부로 밀어내고, 사진 프레임에는 오직 사물을 발견한 순간에 발생한 유사한 ‘작가 시선’을 안착시킨다. 비록 다른 공간, 다른 문화적 배경에 작가가 있을 지라도 염중호는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생긴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문화와 공간이 변모했을지라도 작가는 여전히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주체자가 아니었던가. 이번 전시에서도 이러한 맥락은 여전하다. 그는 여전히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관광하듯 자신의 일상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어슬렁거리면서 일상의 이미지를 채집했다. 얼핏 보면 염중호의 작업은 비루한 일상에서 발견한 사물의 소소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것은 도로변에 깨져서 흩어져 있는 벽돌, 공사장 한 켠에 버려진 폐기물, 도로 한 복판에 종이 박스와 테이프로(또는 검은 비닐로) 남루하게 포장된 정체불명의 물체, 나무 옆에 버려진 시멘트로 만든 받침돌, 자신의 내부를 토해 낸 모래주머니, 뜯겨진 포장 비닐 등 온전한 용도성이 폐기된 사물이 사진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물들은 하나의 사진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진에서 재등장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구축한다. (물론 이 이야기의 서술자는 작가이다.) 개별 사진에서 발견된 사물의 소소한 이야기는 같은(혹은 유사한) 맥락의 사물을 재등장 시키고 있는 작가를 통해 특별한 이야기로 변모한다. 깨진 벽돌은 철판에 놓여 이우환의 작업처럼 보이기도 하며 세면대를 지탱하고 있는 지지대로 사용된다. 또한 배 터진 모래주머니는 간판의 지지대로 또는 도로 한 켠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물의 재등장은 이번 전시 작품에 총체적으로 나타나면서 사진과 사진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얻어진 감성적 태도는 전시 작품을 총체적으로 엮는 특별한 이야기를 구축한다.2)

당신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전시장에는 매끈한 액자에 놓여 화려한 조명을 받는 사진 대신 책 한 권이 있다. ‘사진집’은 독립적인 사진을 작가의 임의적 태도로 순차적으로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사진집’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와 조명을 받으면서 그 자체로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책 한 장 한 장에는 순차적으로 페이지를 부여 받은 염중호의 개별적 사진 작품이 안착해 있다. 그러기에 이번 전시는 ‘작품(사진집)’ 안에 ‘작품(사진)’이 놓여 있는(혹은 ‘작품(사진)’ 밖에 ‘작품(사진집)’이 있는) 구조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사진’이 아닌 ‘사진집’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사진이 사진집에 순차적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사진의 순서는 움직일 수 없이 고정된다. 그러기에 개별적 사진은 사진집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3) 이번 전시에서 염중호는 작품 개별에 특정 제목을 부여하는 대신에 일련번호를 붙였다. (혹여, 사진집에서 벗어난 사진이 있다면 그 사진에게 제목인 숫자는 무의미하다.) 그 결과 염중호의 사진은 독자성보다는 전체 속의 부분으로 작동한다. 그러기에 사진집의 순차적 배열은 마치 전시장의 동선을 구획하는 것과 맞닿아 전시 자체의 리듬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러나 정작 전시장에서 관객은 순차적이 아닌 우연적으로 사진과 마주하게 된다.4) 작가가 제시한 이미지와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발생 하지만 작가가 제시한 이야기의 흐름에 관객이 얼마나 동조하는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염중호는 <새로운 경계>전에서도 단순히 관객 앞에 놓인 사진이 아니라 관객이 찾고 몸을 움직이면서 전시장의 리듬을 만들 것을 요구했었다. 이번 전시 역시 전체 구조를 가지고 있는(사진집) 체계에서 관객에서 파편(사진)을 제시하여 자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구축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작가의 이야기 일수도 있으며, 그것과 상관없는 관객 스스로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당신은 염중호의 사진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는가?
1) 여기에서 ‘숨겨’ 놓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사진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놓았다는 직접적 의미가 아니라, 전시 디스플레이 방식에서 표출된 은유적 방식에 기인한다. <새로운 경계>展전에서는 작가가 일상에서 사물을 발견했듯이 관객이 사진을 발견하도록 디스플레이 되었다. 전시장의 하얀 벽면을 그대로 노출시킨 작은 사진, 일정한 동선을 유도하며 동일한 시선의 높이에 배치된 사진, 그로인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관객의 행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
2) 그러나 간판이 지지대에서 벗어나 있는 간판을 지지하고 있는 모래주머니 사진에서 알 수 있듯 여전히 개별 사진은 비루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하고 있다.
3) 전시와 작품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 그러나 전시장을 아무리 관객의 동선을 고려하여 조직했다 해도, 비선형적으로 움직이는 관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책은 선형적으로 구성되어 작가의 총체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4) 어쩌면 관객은 사진집을 통해서 사진집의 전체 이야기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함께 전시되고 있는 작가가 발견한 오브제를 통해서 또는 전시장에 옮겨 놓은 전시장을 통해서 사진집 전체 이야기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염중호는 중앙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였으며 파리 8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일본, 한국, 파리 등을 오가며 전시하였으며 국내 광주비엔날레 등에 참여하였다. 현재 서울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