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h Dongwook, My Blue Baggage,  Installation View, ONE AND J.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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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되지 않는 내러티브 혹은 감정에 대하여
스스로를 응시하라! 그러나 빛을 돌려주는 것은 그림자의 음울한 다른 면을 전제로 한다.
-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서동욱의 작업(그것이 회화이건 영상이건)은 구원을 기다리고 있던 과거가 현재의 어떤 순간에 개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동욱의 작업에서 유의해야 하는 것은 과거의 주체자와 현실의 주체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 부재하는 타자의 것이고, 현재의 이야기는 자신의 삶에 개입한 타인의 기억을 재구성한 현재의 재현자의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고, 그들의 이야기는 상호 충돌하며 순환한다. 즉 과거의 것이 현재에 개입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이야기가 과거에 개입하기도 하면서 종국에는 두 재현자와 관계없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생성된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영상작업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구원을 기다리는 타인의 과거에 대한 현현(顯現)
서동욱이 자신의 작업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던 (2004)는 ‘연애에 탕진한 나의 20대에 바침’ 이라는 말과 함께 끝을 맺는다. 는 한 여성이 남기고 간 상자에서 시작된다. 그 상자에는 그녀의 파리 생활을 규정해 줄 수 있는 ‘정지된’ 사진들이 있다. 그것은 그녀를 구성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서동욱은 그 지점을 ‘정지된’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기억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서사로 전환시킨다. 대상은 현재 부재하고 그것의 파편들만 남아있다. 이러한 단서들을 가지고 인물을 구성하는 것은 한 개인을 드러내는 것이면서, 그곳에는 반드시 기억의 주체(서술의 주체)가 개입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작업의 종착점이 ‘Mimi’라는 여성이 아니라 ‘나의 20대’로 향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영상 작업인 <불꺼진 극장의 거리>(2007) 역시 한 인물에 대한 회상, 그리고 그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심서사이다. 그러나 에서와 마찬가지로 찾고자 한 인물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작가의 기억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또 다른 화면에 등장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은 이승현의 이야기가 흐르는 매 순간 그 주변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지점을 제외하고 두 인물은 어떠한 연관관계도 없다. 두 개의 채널을 장악하고 있는 목소리는 이승현의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있기에 일견 정체모를 남자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이 몰고 있는 차의 강한 헤드라이트 앞에 노출된 남자가 불빛을 받고 정면을 응시 할 때(이 지점에 이를 때까지 두 개의 채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번도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다.) 아무 의미 없던 불특정 다수였을 정체모를 남자가 이승현의 화면에 개입하게 된다.
이번 전시의 (2009) 역시 그간의 영상작업과 마찬가지로 ‘불현듯’ 찾아온 타인의 기억에 의해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는 빛과 어둠을 구획하면서 시작된다. 어둠 가득한 공간에 빛이 있는 두 개의 방이 있다. 하나의 빛이 꺼지고 남은 하나의 빛 아래 푸른색 가방을 둔 여자와 남자는 마주한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관객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그들의 대화가 아니라, 아무 의미없이 발생하는 부산물과 같은 소음뿐이다.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움직이는 남자의 몸짓의 소리는 명확하게 들리지만, 정작 듣고자 욕망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지연된다. 단지 그들의 대화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여자가 남기고 간 메모에 쓰여 있는 주소뿐이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했으며, 그 메모와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그 남자는 단지 그 가방을 메모에 적힌 주소에 가져다주고자 할 뿐이다. 의미 없는 소음들로 가득했던 영화에서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그 남자는 처음으로 ‘언어(자신의 욕망)’를 발화한다. 무의미하고 나른한 일상에서 그가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 후 또다시 그의 언어는 차단되고 일상의 소음과 시각이미지로서만 영화는 전개된다.
는 이 이야기에 또 다른 이야기를 첨가한다. 식당일을 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남자는 푸른색 가방과 관련된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을 한다. 그런데 친구의 반응은 “근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이다. 이 뻔한 이야기는 앞의 이야기와 유사관계를 맺고 있다. 푸른색 가방, 앞의 이야기에서 남자가 돈을 빌린 사람이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는 점, 전자와 후자의 공간이 같다는 점, 같은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 전자의 메모를 후자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들은 같은 인물일 수도 있고, 후자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의 이야기 일 수도 있고, 한 인물의 현재와 과거 일수도 있으며, 전혀 다른 인물 일 수도 있다. (전화 통화내용에서 돈을 보내달라는 전자와 돈을 보내겠다는 후자는 동일한 계좌번호를 공유하고 있다.) 이렇듯 유사한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상호 교차하기도, 혹은 충돌하기도 하면서 특정한 내러티브 자체를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상태에 관객이 공감하게 한다.
서동욱은 여기서 내러티브를 종결하지 않는다. 내러티브에서 주요 지점을 다른 매체인 회화로 구현한다. 이는 영상에서 삭제된 내러티브를 회화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러티브의 복원은 개별 장소, 인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내러티브에 종속되어 있는 특정한 장소와 인물의 복원이다.) 회화 속 인물 혹은 공간은 강한 플래시에 노출되어 있다. 강한 플래시에 노출된 인물과 공간은 실재적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마주침의 순간)에 달라붙게 하려는 듯 납작하게 2차원적 평면에 밀착되어 있다. 그곳에는 인물과 공간에 있을 법한 개별적인 전후의 서사는 차단되고 오직 마주보는 주체(내러티브)가 포착한 시선만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세부적인 표현을 화면 전체로 확장하여 특정 주제를 강화하기 보다는 빛이 투여될 당시에 포착된 순간의 색면을 표현하여 강조한다. 그곳에는 모델(특정한 인물과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자의 (내러티브의 감정을 표현한) 시선이 자리한다.
이대범 미술평론가

서동욱 1974년 서울 생.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DNSAP, Ecole Nationale Superieure d’art Paris-Cergy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파리에서 Un Regard, La Vitrine를 시작으로 쌈지 스페이스, 아르코 미술관, 루프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해왔으며 2006년 파리의 Gallery Mille Plateaux, Gallery Cite International des Arts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국내에서는 2006년 대안공간 루프, 2007년 ONE AND J. GALLERY, 2009년 갤러리 현대 윈도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