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ohyeok Shin, One day, Somewhere,  Installation View, ONE AND J.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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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기억과 기억의 공간
예술은 그 시대와 사회의 세계상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예술가는 반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관통한 시선으로 세계를 발현시키는 자이다.
―작가 논문 중

누구나 낯선 장소에 들어서게 되면, 가장 먼저 여기가 어디인가라는 반성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성에는 애초부터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있다. 보이는 것이 건물, 도로, 자동차, 사람들, 들리는 것이 경적소리, 대중가요, 또는 웅성거리는 목소리라는 인식들로서 이미 습관적으로 기억되어 있는 것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낯설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습관적인 기억(souvenir-habitude)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기억, 즉 이미지기억(image-souvenir)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우선, 지역 명, 건물명, 도로 명 등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된다. 다음으로 정확한 기억을 위해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면서 언제인지를 기록으로 남긴다. 예를 들어, 여행 같은 길 찾기가 그러한데, 여행은 낯섦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적인 과정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사 같은 경우는 다르다. 많은 것이 낯설지만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의 반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반복함으로써 낯설었던 곳은 점차 익숙한 것이 되고, 언어습득이나 걷기처럼 습관적인 기억이 된다. 말하자면, 구체적인 기억의 반복을 통해 굳이 반성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면서, 또 다른 구체적인 기억의 바탕이 되는 습관적인 기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이사한 집은 예전의 집이 된다. 작가 신수혁의 작업은 이러한 낯선 곳의 경험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한 여정을 기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억에 대한 작업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기억을 작업의 모티브로 다루게 된 것일까?
작가는 2002년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모든 것은 낯설었을 것이다. 낯섦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과도 같은 길 찾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궤적을 만든다. 기록하는 방식은 날짜도장으로 찍은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년여 동안 진행되었다. 여러 번 간 곳은 그만큼 진하게 되고, 진한만큼 그에게는 익숙한 곳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도작업은 1950년대 말에 발생했던 상황주의 운동(Situationist International)의 작업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콩스탕(Constant, 1920-)의 새로운 바빌론(New Babylon, 1958)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유사해 보인다. 비록 전후의 사회적 배경과 도시개발의 비판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정치적인 관심이 콩스탕같은 상황주의자들에게는 중요했지만, 공간을 심리적이고 참여적인 문제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신수혁과 내용적인 연관성을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상황주의의 지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선, 그가 새로운 도시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의 기록이라는 점에 정치적인 관심과는 무관하기 때문이고, 그가 자신이 직접 다닌 길을 도장으로 찍는 행위는 도장의 의미가 각인의 다른 표현이듯이, 심리적인 문제를 넘어서 신체적인 문제에 닿아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간에 대한 관심은 낯설음이라는 심리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듯이 심리적인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다. 실존철학에서 말하듯, 불현듯 찾아오는 낯설음이 모든 존재자들에 관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메스꺼움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도장을 찍는 과정으로 해소될 수도 있다.
도장 찍는 작업을 기반으로 2006년, 새로운 작업이 시작된다. <One day Somewhere>전의 중심을 이루는 작업으로서, 흰 바탕으로 이루어진 화폭에 어떤 건물의 부분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재료로는 연필을 사용하여서 단색조의 모노화의 느낌을 갖게 한다. 둘 다 작가가 체험한 공간에 대한 기록이지만, 전작이 상공의 시선으로써 재현되었다면, 후자에서는 시선이 지상으로 내려온다. 체험의 구체성을 담기에는 상공의 시선과 숫자로 이루어진 형식이 너무 관념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표현행위의 자발적인 요구 때문에 작가는 다시 그리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하지만 기억을 표현하려는 근본적인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 이유는 기법의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흑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은은한 느낌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밀한 묘사를 선택한 점에서 은은함과 상충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명료함으로 명료함을 극복한다는 방식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여하튼, 작품을 보면 은은하고 고요한 정서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정서를 위해서 작품의 배경의 기능을 하는 흰 여백은 수십 번의 젯소칠과 고르게 만드는 샌딩작업의 공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순백색의 여백은 무한대의 깊이를 지닌 평면으로서 정교하게 그려진 이미지를 빨아들이면서 드러나게 한다. 이러한 효과를 더 강도 있게 하기 위해 그려진 건물이 주변과 만나는 윤곽 밖은 그리지 않았다. 작가의 시선을 사로잡음으로써 그에게 기억의 지표가 된 건물 이외의 것들은 모두 흰 배경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하지만 건물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들의 기능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를 통해 그 당시 작가의 몸이 자리했던 위치가 명확해 진다. 물론, 여기서 명확하다는 것은 오로지 그 이미지를 기억으로 소유하고 있는 작가에게 그러한 것이며, 우리는 건물이나 지역의 이름을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에게 명확한 기록에서 우리는 어떤 낯설음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려진 이미지라서가 아니다. 흰 배경이든 그려진 건물이든, 우리는 작품을 대하면서 작가의 기록과는 무관하게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적인 기억과 습관적인 기억을 투사할 수 있고, 수동적으로라도 투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호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려진 이미지는 작가의 신체적인 반응과 심리적인 반응의 가교인 이미지 기억물이기 때문에 이 가교에 의해 우리는 작가와 연결되는 것이다. 예컨대, 그림을 대하면서 우리는 작가의 입장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의 시선의 위치를 보게 되면, 그의 시선은 도로나 골목, 건물 위를 넘나들지만, 이러한 시선을 작품 하나하나 보면서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선은 공간을 점유할 때 인식론적인 분석을 통하지 않을뿐더러, 기억의 차원에서 작가와 소통하는 것이므로, 작품 앞에 선 우리의 위치가 곧 작가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체험된 공간의 표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는 설치작업을 병행한다. 따라서 설치작품을 그의 주된 작품 성향으로 볼 수는 없지만, 본 전시에 설치되는 공터 작업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해 보인다. 70년대에서 80년대 우리나라는 한창 건설 중이었다. 이 시절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는 공사장에 으레 공터를 많이 접하면서 공터에 대해 낯설면서 친숙한 정서를 가졌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유학시절 매일 다니게 된 길에서 그러한 정서를 상기시키는 공터를 접하게 된다. 기초공사가 된 채로 있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의 공터다. 전혀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임에도 그에게는 과거의 기억을 미래로 끌어들이는 모티브가 된 것이다.
우리는 기억에 의해서 살아간다. 그것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또는 습관적이든, 임의적이든 간에 기억 없이 지속되는 삶은 없으며, 또한 그만큼 표현되지 않는 기억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표현의 문제에서 보게 되면, 예술작품은 기억자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이 예술이라고 한다면, 앞서 견주었던 기억의 두 측면을 얼마만큼 균형 있게 잘 연관 짓고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개인적인 정서에 관련될 수록 더 그렇다. 작가가 말하듯, 의미 있는 세계는 개인들을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하나의 새로운 공간에 옮기는 신수혁의 작품들은 이러한 관심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박순영 미학자(美學者)

신수혁 1967년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회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동경예술대학교 대학원 미술연구과 회화전공 박사학위 취득. 1997년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수상. 2009년 ONE AND J. GALLERY 에서 귀국 후 첫 개인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