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희는 낙서화와 같은 벽화, 그리고 추상회화 시리즈를 주로 선보여 온 한국의 젊은 작가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스쿨, 영국 왕립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에 돌아와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아트선재센터 1층 카페 벽에 보여진 "No. 1 (넘버원)" 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성낙희’ 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이후 이 "No." 작업들은 다른 장소에서 시리즈 작업으로 이어져, 제주 국제 컨벤션 센터, 상하이 비즈아트 아트센터,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등 국 내외 여러 장소에서 선보여 왔다. 지금까지의 그녀의 작업은 스냅 사진 이미지를 이용한 회화, 장소 특정적인 벽화 드로잉, 그리고 추상회화 시리즈로 집약될 수 있다. 작가는 종이와 캔버스, 전시장 벽 등 매체에 구애 받지 않고 색, 면, 선과 같은 지극히 간단한 조형요소를 사용해 다양한 장소에서의 표현의 ‘과정’을 탐구한다.
표현의 과정을 탐구하는 성낙희의 그리기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작가는 정확한 결과를 생각하고 그것을 재현하는 식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완전한 작품의 결과보다는 상황을 콘트롤해 내는 데 초점을 두고 뚜렷하게 무엇인가를 그려내겠다는 구체적인 목적 없이 그녀의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는 대로, 변화하는 대로, 손을 움직인다. 그녀의 모든 작업들의 시작은 언제나 즉흥적이다. 작가의 의식, 생각, 혹은 아이디어들은 작가의 손을 빌려 선으로, 면으로, 색으로 벽과 캔버스라는 공간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다. 그려진 형태의 결, 칠해진 색의 흐름에 따라 이후에 그려지는 선과 면, 그리고 색이 결정되는데, 이들은 서로 연결 되기도 하고 혹은 서로를 해체 시키기도 하면서 전체 공간을 구성해 나간다. 시작은 매우 직관적이나 이후의 과정은 선과 면, 색의 조화와 균형을 만들어 나가는 비교적 이성적인 작업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레이어 구조를 생각해내면 그것이 자기 영역을 확보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려 나가는 것이다.
원앤제이의 "Motion" 전에서 선보인 추상화들은 "무제" 로 일관되었던 기존의 작품 제목들과는 달리 "Quick Mode," "Lounge Area," "Tipsy" 와 같은 구체적인 제목이 붙여졌다. 그렇지만 이전 작업들과 같이 표현의 과정과 의식의 흐름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들로 보여진다. 오히려 커다란 벽에 펼쳐져 있던 그녀의 작업방식이 캔버스에 응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캔버스 작업들은 언뜻 보면 구성 디자인에 가까운 깔끔한 추상화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표현의 과정, 즉 의식의 과정이 투명하게 담겨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의식의 과정은 선, 면, 혹은 색의 레이어 (layer)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과정 (process)’은 언제나 시간을 함께 동반하는데, 이러한 시간의 선(先)과 후(後)는 색면의 레이어를 만들어 내고, 작가는 그 구조를 노출시킴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의식의 지도를 찾아가도록 만든다. 선의 흐름, 중층적인 색면, 그리고 형태의 결은 작가의 의식을 따라가게 만드는 일종의 지표인 셈이다.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질서를 좇다 보면 정신의 그리드들을 유추할 수 있다. 최근의 캔버스 작업은 몰입 되고 응축된 작가의 의식들을 쌓아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전 작업들에 비해 시각적으로 무게감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작가의 의식은 화면 속에서 조화로움을 지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고 서로 부딪히기도 하며 결합되다가 다시 부서지기도 하고, 가끔은 입체적인 착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튜브와 같은 선들의 흐름으로, 물감의 번짐이나 떨어진 흔적들로, 특정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형상들이 움직이는 듯한 인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층적인 색의 구조는 곧 작가의 의식의 구조이면서 동시에 화면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가가 사용한 보색과 형광색이 만들어 내는 색의 조화는 구축되는 의식뿐 아니라, 해체되는 의식조차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이렇듯, 성낙희의 작품에 있어 ‘색’은 시각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요소이지만, 분석의 대상도 기호적인 해석의 대상도 아니다. 색의 상징, 색채가 가지는 사회적 알레고리는 없으며 색에 관한 해석의 권한은 관람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작가, 혹은 인간 의식의 흐름과 구조를 보여주고 표현의 과정을 드러내는 성낙희의 작업은 혼란과 질서, 감정과 이성, 추상과 구상, 대상과 공간과 같은 구분이 무의미함을 깨닫게 하고, 이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상상과 사유에의 길로 우리를 이끈다.
김희경

성낙희 1971년 생. 로드 아일랜드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현대갤러리와 아트선재 전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2006년 Motion, 2007년 Range. 두번의 개인전을 ONE AND J. GALLERY에서 가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