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m Suyoung, Balance and Symmetry, Installation View, ONE AND J.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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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RWI)이라는 건축물을 그릴 때, 그것은 현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건물 풍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명건축가의 건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이와 동시에 건물의 한 ‘부분’을 확대시켰으며 이를 ‘대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시점은 도시 속에 있는 풍경을 담아내려는 의지보다는 ‘건축물’,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후에 작업환경을 한국(서울)이라는 곳으로 옮긴 후에도 그는 건축물의 ‘부분’을 크게 확대시키면서 동시에 자연스레 한국에서 보여 지는 건물로 대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현재, 그는 대칭적 구도가 되는 건물들의 부분부분을 찾아다니면서 거기에서 보여 지는 ‘두면‘, ‘양면’에 관하여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아님 재미를 찾으려 힘들어 하는 것 일지도,
그의 지난 행적을 가만히 쫒아가 보면 그는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 할 수 있다. 거기에는 크건 작건, 어떠한 사건도 없다. 이야기도 없다. 심지어 재미를 주는 요소도 없다. 단지 그의 눈앞에 놓인 것은 ‘건물‘이며, 그와 동시에 ’그림‘ 앞에는 ‘그‘가 있다. 그는 이런 따분한 작업을 10년 넘게 계속 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까? 가끔씩 하는 전시가 그의 행보를 알려주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세상에 그의 행적은 스스로 사그라질 만큼 느리다. 이렇게 작업을 하는 그는 분명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이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그 ‘무엇‘ 난 그것이 궁금하다.
그의 대상은 건물이다. 또한 건물의 한 부분이며, 그 부분 속에서 드러나는 구조일 수도 있으며 색채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전시에 보여 지는 것의 대부분은 대칭적 구도와 대비효과를 가진 건물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림에서 보여 지는 대칭이란 측면부가 중심에 종속하는 것, 즉 화면 속에 최대한 중심에 근접한 선을 경계로 좌우 혹은 위아래의 계층적 질서를 뜻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업엔 두 개의 성질이 보여 진다. 그 중에서 대칭적 구도를 가진 작업들은 ‘양면’(1개를 제외한 아파트 작업들, 종근당, 구 어린이회관)이며, 그 이외의 작업인 ‘두면‘은 화면의 중심점에서 선을 위아래 직선으로 그은 후, 좌우의 면에 ’대상‘을 다르게 설정한 경우이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양면‘은 건물의 모서리를 캔버스의 중심축에 놓고서 좌우를 포갠 듯이 그린 것이고, ’두면’은 다른 두 건물을 정확히 이등분한 캔버스에 재구성해 놓은 것이다. 두 개의 그림은 언 듯 보면 단순히 화면을 이등분해서 그린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양면’의 경우 동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해서 명암대비와 색상대비를 좌우에 번갈아가면서 사용하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이러한 대조, 대비효과는 화면에서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 대칭적 구도를 역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선택 이였을 것이다. ’두면’의 경우, 좌우에 그려진 두 개의 건물은 서로 다른 거리에 들어서 있는 그 상태를 그린 것이다. 그는 두 건물의 공간감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그림의 성질중 하나인 평면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색채와 명암 그리고 대비효과를 조화와 안정을 가진 물질적 방법으로 캔버스에 밀착 시키려는 노력을 해 보인다. 그것은 캔버스의 평면이 이차원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그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서 여러가지 측면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고민은 머리에서 계산되어 진다기 보다는 수 없는 시행착오와 비교분석을 가져야만 본인 스스로가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양면’의 경우에 좌우 면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대비효과에 많은 경우의 수를 놓았지만, 그 결과 그에게 더 많은 숙제를 가져다 준 듯하다. 그것에 비하여 ‘두면’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의 연장선에 있었기에 그에게 익숙해진 풍경이었을 것이다. 암튼 주절주절 써놓은 것 보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흥미와 고민을 가져다 준 부분은 당연 ‘균형‘ 일 것이다. 특히 일반적인 풍경화나 인물화가 아닌 위와 같은 구도에선 ’균형‘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하나의 '대상'이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대상’은 ’다양성과 통일성‘, ’변화와 조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자치, 매우 무미건조한 작업으로 진행 되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밋밋함을 넘어서기 위해서 그가 취한 방법은 ‘양면‘작업에서 보여진다. 즉 ‘반복적으로 묘사되는 형상이 통일성의 성격을 보여준다면 색채대비, 명암대비 등은 다양성을 위한 하나의 역할’ 이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위의 성질들이 서로가 ‘균제‘ 되어 질 때, 그리고 그가 그런 ‘대상‘의 무게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관하여 스스로 고민할 때, 작업은 자생적으로 흥밋거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래서 인진 몰라도 그는 ‘양면’과 ‘두면’에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 이젠 그에게 다시 물어 보고 싶어진다. 당신의 ‘대상‘은 건물입니까?
이번 작업을 위해서 그가 스스로 가졌던 질문은 무엇일까? 직접 물어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그렇다고 짐작이 아예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에게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어 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지 않은 화가가 어디에 있냐고 되물어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난 그의 이런 자세에 주목한다. (‘그리다’와 ‘그린다’) 그는 언제나 이 두 가지의 성질을 매일 습관처럼 반복해 왔다. 여기엔 다른 무엇보다도 그림 앞에 마주하고 있는 그의 행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건물을 그린다기 보다는, 물감이 이미지로 전환되는 방법을 그는 매순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왜, 그렇게, 그가 그런 과정을 반복했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의 이러한 작업행위는 흡사 백자를 대하고 있는 장인과도 같다. 장인은 어느 누구보다도 흙을 다루는 방법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장인은 흙을 쉽게 여길 줄 모른다. 그리고 백자가 구워지고 본연의 색깔이 스스로 빛을 바랄 때까지 장인은 긴장감을 놓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그는 위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있다. 하루같이 그림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몸짓에는 이미 준비되어진 본인만의 ‘방법론’이 존재한다. 그런 것이 작업을 통해서 쉽게 들어나지 않은 까닭은 ‘자세’라는 것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린다. 자! 이젠 당신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김수영은 서울대학교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Kunstakademie Dusseldorf 에서 석사를 받았으며, Hochschule fur Bildende Kunste Braunshweing에서 수학하였다. 국내외의 다수의 전시에 참여하였으며, 현재 서울 몽인아트스페이스 입주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