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tween, Installation View, ONE AND J.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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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는 유령이다. 한 때 사형선고(죽음/폐기)를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들의 굳건한 믿음을 저버리듯 회화는 지금도 살아서 버젓이 현실계를 활보한다. 어쩌면 회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거대한 몸(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회화의 거대한 몸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우선 ‘재현’을 바탕으로 현실을 시각화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본다’는 행위가 선행하지만, 그것으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본다’는 행위에 선행하는 ‘인식한다’는 행위 때문이다. 즉, 이미 인식의 체계를 장악한 무수한 시지각적 관습에 의해서 대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본다’는 것과 ‘인식한다’는 것이 종합되는 과정에서 재현의 방법론을 거쳐 재구성되고 발견되는 것이 회화가 보여주는 세계의 시각화이다. 그렇다면 회화의 역사는 관습적인 시각체계를 거부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서 구축된 시지각 전복의 역사여야 한다. 한국현대회화는 외부적으로는 ‘미완의 민족국가’라는 정치적 환경이 야기한 ‘순수와 불온’의 극단적 이분법, 내부적으로는 서구 모더니티의 피상적 수용을 통해 현실이 배제된 화면을 구축했다. 그러기에 한국현대회화는 현실의 제 문제를 평면의 절대성 앞에서 지우고, 은폐하고, 과장하며 현실을, 삶을 왜곡했다. 그 결과 회화는 현실에 침묵하기 위한 과잉된 수사로 점철되면서 우리 눈앞에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현실(삶)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당대 시지각 체계를 의심했던 작가들은 한국현대회화의 가장 중요한 성과 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까지도 회화의 유효한 과제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관점에서 12명(김홍주, 유승호, 문성식, 민정기, 정재호, 이호인, 주재환, 안두진, 권경환, 황세준, 노충현, 박진아)의 작가가 참여한다. 같으면서도 다른 선후배들의 작업 그 ‘사-이에서’가 한국현대회화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홍주(1945년생)
꽃 그림 작가, 글자 그림 작가 등으로 명명되는 김홍주 작가는 1945년 충북 회인에서 태어났고 청주사범학교와 홍익대학 및 대학원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1970년대 초부터 S.T그룹활동을 시작으로 하여 개념 미술에 관심을 갖다가 1970년 대 중반부터 회화작품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창문 틀과 거울 틀 등을 사용하여 그 틀 속에 인물 및 풍경 등을 그려 넣다가 80년대 초반부터 캔버스에 작업하면서 이미지와 오브제를 사용하게 되었다. 1978년 대한민국 미술대상전에서 최우수 프론티어상을 수상한 이후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국내의 대표적인 중견 작가로 자리를 굳혀왔다. 그는 개념 미술을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극사실주의 등의 다양한 작업들을 진행해왔으며,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주로 꽃, 풍경과 같은 소재의 평면회화를 통해 회화의 본질과 의미에 관심을 가져왔다.하찮은 존재라 여겨 ‘꽃’을 택했다는 김홍주. 그의 꽃그림은 화사한 색감과 아크릴릭 물감의 얇은 채색이 주는 산뜻한 느낌에 힘입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김홍주의 ‘꽃’ 그림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계기는 1999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친 국제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이다. 이를 발판으로 2005년 로댕갤러리에서 그의 대규모 전시가 열렸다. 로댕갤러리는 한국 회화작가로는 최초로 김홍주를 초대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 대전 목원대로 자리를 옮긴 후, 30여 년을 대전 목원대에 재직하며 대전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문성식(1980년생)
국제갤러리 소속작가문성식 작가는 1980년생 경북 김천 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예술사, 전문사)를 졸업했다. 그가 한 잎 한 잎 그려내는 나뭇잎들은 매우 정교하며 작위적인 공간을 만들어내지만 이러한 공간들은 새로운 레이어를 통해 무의식의 세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2005년 51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에서의 전시(Secret Beyond the Door)에 참여했다.

유승호(1970년생)
유승호 작가는 청각적 언어인 문자를 활용해 시각적 언어인 회화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풍경화와 유희적인 초상화 및 회화에 대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그의 작품 속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동양화의 기법과는 상이하다. 상술하자면 그의 작품 속의 이미지들은 점과 선, 단어와 이미지 간의 경계를 흐리면서 동양 미술사의 권위에 대한 새롭고 미묘한 해석을 통해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작가는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 서, 화가 합쳐진 동양화적 특징을 살리면서도 변형하였는데, 이미지와 함께 글을 담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이미지와 글로 표현하였으며 그 글을 현대적인 언어로 재해석하여 유희적으로 나타내었다. 유희와 해학 또한 한국의 전통적이며 독창적인 정서로서 작가는 이러한 면에서도 전통을 따름과 동시에 변형하고 있었다.

민정기 (1949년생)
민정기 작가는 1972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1981년 2회 파리 비엔날레(파리), 1988년 ‘민중 미술’전(Artists Space,뉴욕), 1994년 민중미술 15년 평가전(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95년 광주비엔날레 ‘광주 5월 정신전’(광주시립미술관, 광주) 등을 통해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다.
민정기는 80년대를 지나오면서 자신의 내부에서 사회적 모순과 삶의 구조에 대한 인식체계를 찾아내고 이를 다양하고 풍부한 회화형식에 담아내고자 하였는데, 소위 ‘이발소그림’이라는 키치적인(상업적이지만 고급예술인 듯한) 이미지를 가지고 그것을 표현했다. 1990년대부터는 풍경을 그리고 있는데 이 풍경화는 우리의 자연을 우리 식으로 다시 보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공간 내에서 형성되는 삶의 특수한 시간과 공간을 회화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풍경화를 이전에 사용했던 까칠까칠한 터치를 일종의 준법처럼 사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화나 아크릴화의 짙은 밀도와 풍부한 색감을 전통 회화의 개방적인 형식과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그리고 있다.

정재호 (1971년생)
산아제한을 권장하며, 경제개발을 향해 무서운 질주를 하던 1970년대 테어난 정재호는 우리를 둘러싼 동시대 ‘환경’을 첨단 기술이 아닌 동양화로 기록한다. 이것은 정재호의 기뢱이 단순한 가시적 세계의 재현에서 벗어나 비가시적인 삶의 내력까지 다루고 있음을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재호는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성장한 ‘오래된 아파트<청운시민아파트,2004>, 오래된 아파트(2005)를 그렸다.

이호인(1980년생)
이호인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현실과 판타지가 조우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풍경들이 펼쳐지는 그의 화면은 작가로부터, 그리고 관람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혹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세상이다. 익숙함과 낯설음이 공존하는 풍경을 조망하는 그의 시선은 타인과 다르지 않은 스스로의 모습을 꿈꾸는 자신에게로 다시금 회귀한다.

주재환(1941년생)
주재환 작가는 60세 되던 해, 1998년 아트 선재 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화제가 됐다. ‘민중미술’이라 불리는 참여미술 진영에서 원로 반열에 든 작가이자, 평단에서는 한국적 개념 미술의 선각자로 꼽혀왔다. (개념미술은 완성된 미술품 자체보다 머리 속 아이디어나 착상 과정을 예술로 보는 미술 장르를 가리킨다.) 실제로 그는 해학과 풍자를 섞어 한국 미술판의 아트를 구성지게 풀어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입심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참여 미술운동의 모태인 ‘현실과 발언’ 동인 창립전(1980) 때 주씨는 지금껏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몬드리안 호텔’을 선보였다. 블랙 유머와 언어적 유희, 일상의 예술화를 통하여 자신의 작품을 자유롭게 표현해 왔다, 캔버스를 태우거나, 썩는 치즈를 붙이거나, 화이트 보드 또는 신문 광고란까지 이용하는 등의 작품을 1980년에서 2000년대에 시도하였으며, 2009년까지는 유화 작업에 주력.

안두진(1975년생)
안두진은 이미지의 최소단위를 뜻하는 이마쿼크(ImaQuark)라는 개념을 고안해내고, 이를 이용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바꾸어내는 작업을 한다. 그는 최근 화려한 인조물감과 장난감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설치 작업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주로 템플이나 사원과 같은 숭고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가볍고 조야한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는 그의 공간은 작가가 수집한 인간 문명에 관한 이야기와 본인의 상상세계가 한데 어우러져 재구성된 것이다.

권경환(1977년생)
권경환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I AM AN ARTIST’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하였으며 2009년 ONE AND J. GALLERY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서울 창동스튜디오 8기 작가이다. 권경환은 대학원 재학 시절 작업에서 일상 사물에 관한 일반적 인식을 비틀어 낯선 상황을 야기했다. 흑과 백이 만나고, 만화 캐릭터와 미사일이 만나고 그것들은 거대한 구름을 만들며 폭발하며, 이 상황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 설명한다. 우리의 망막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권경환은 검은 종이에 하얀 색연필로 세심하게 재현한다.

황세준 (1963년생)
황세준 작가의 풍경화에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장소나 소소한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일상적인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한 뒤에 기억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사진을 보면서 그려나가는 그의 그림은 작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림에서 발견되는 이야기의 단서들은 흔히 마주치는 화단이나 거리의 풍경, 도시의 모습이다. 변화하고 일시적인 도시 모습의 순간성을 작가는 그림으로 기록한다.
황세준작가는 도시-변두리의 누추함과 소소한 삶의 모습을 일종의 친근감을 가지고 바라보지만, 난개발과 사람들의 과포화된 욕망, 그리고 그런 과도함 때문에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한 동시대의 삶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작가는 존재의 보편적 비참함-보편적 존재의 비참함이 아니라-을 드러내기 위해 일상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내면 풍경을 찬찬히 살펴본다. 여기서 말하는 ‘비참’은 사회, 경제적인 어떤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그와 더불어, 혹은 그것 이상으로, 인식하는 존재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이 세계의 교만함과 비루함에 대한 ‘전체적 자의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상태의 세계를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약간 헐렁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그리고 가급적 유머러스한 방법과 연민의 감정으로 우리 삶의 누추와 비참을 보려고 한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그것만이 절망하기에는 상스럽고, 희망을 갖기에는 부질없는 시대를 가감없이 바라보며 견디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노충현 (1970년생)
노충현 작가는 1970년 경남 창녕 출생. 홍익대학교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노충현은 메마른 공간의 풍경을 회화속에 담아낸다. 그는 도심속의 부재의 공간을 통해 상실의 정서를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다. 최근의 개인전 실밀실(室宻室)을 통해 보여준 폐쇠적이며 일방적인 나아가 폭력적으로 비춰지는 현실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작업들에서 공간의 역사성, 장소성을 더해 한결 풍성해진 네러티브를 보여주었다.

박진아(1974년생)
박진아 작가는 다국적 패션기업 에르메스코리아의 2010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최종 후보다. 박진아는 일상생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여유를 포착하여 그린다. 그들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자유로운 표정들을 사진으로 포착한 후, 각각의 인물들을 캔버스 안에 다시 구성하여 옮겨 그린다. 상호관계가 없는 포즈들을 연합하는 것은 우연성을 수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한 구성을 필요로 한다.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대상이 회화 안에 위치되는 방식, 즉 회화 자체의 논리가 드러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중성적 특질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서정성을 지니며 균형을 잡고 있는 박진아의 작품은 작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회화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금호미술관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광주비엔날레와 국내외 다수의 그룹 전에 참가하였으며 2010년 성곡 미술관에서 전시가 예정되어있다.